정사이야기

아름다운 곳, 행복한 시간

체험후기

430년 고택에서 느껴보는 선비문화와 정신

다시 찾을 날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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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수권
댓글 0건 조회 3,054회 작성일 14-07-3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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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름휴가를 지인들과 함께 보내고 남은 기간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어 고택(古宅)을 알아보던 중 옥연정사(玉淵精舍)가 눈에 띄었다. 이름은 낯설었으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대감께서 징비록(懲毖錄)을 집필하신 곳이라는 설명만으로 다른 고택을 더 찾아 볼 이유가 없었다. 사실은 진채선, 허금파, 김여란, 김소희 선생 등 판소리 여류명창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 전북 고창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터라 전라도 지역의 고택을 알아보려던 차였는데, 내 여름휴가는 졸지에 경북 안동행이 되었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유명한 고장인 안동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고 여행에 대한 결심도 계시를 받듯 순식간에 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여행길은 매우 낯설었다. 옥연정사에 대해서도 징비록 집필처라는 것 이외에는 정보가 없었는데, 대개 사전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은 실망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나 이번만은 참으로 축복 받은 여행이었다. 여러 가지 좋은 일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은 주인께서 베풀어주신 친절과 보살핌이었다. 현지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재 옥연정사에서 손님을 맞고 계신 분은 풍산 류씨 서애종가의 차종부(예비종부)이신 이혜영 여사님이시다.

 

옥연정사에 대한 첫 느낌은 너무나 훌륭한 풍광 속에 있으면서도 그곳에 있음을 밖으로 뽐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 선조들의 건축사상, 즉 한옥의 장점을 설명할 때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어우러지는 점을 드는데, 옥연정사는 이러한 어우러짐에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단지 그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산 선생께서 유배생활을 하시던 다산초당(茶山草堂)과 같이 산 속에 완전하게 묻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자연 속에 있고 싶은 마음, 그 마음에서 조금도 더 나아가지 않은 절제가 오롯이 느껴졌다. 이는 기거하는 곳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던 선비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마을과 가깝고 절경 속에 있다는 것은 옥연정사의 단점 아닌 단점일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서애 대감께서 사시던 때는 마을이 가깝더라도 지금과 같은 규모의 관광객도 없었을 것이고 하회마을에서 건너올 수 있는 나룻배만 묶어 두면 인적은 드물었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절경보다는 대감을 뵙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지금은 낮 시간 동안에 하회마을에서 나룻배를 이용해 낙동강 지류인 화천(花川)을 건너 오는 사람들이 화천서원과 부용대까지 둘러보는 코스 중에 하나로 옥연정사를 둘러 보는데 고택에서 머무는 입장에서는 이 점이 작은 불편이 될 수도 있겠으나 저녁에는 출입을 통제하고 주인께서 너무나 잘 살피어 주시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하룻밤 머무는 손님의 입장보다는 유명한 관광지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을 지키며 실제 주거하시는 분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실제 후손들이 주거하는 곳이라면 일반 관광객의 출입을 제도적으로 막는 것도 결코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고택 체험이나 견학과 같이 소수의 통제된 형태의 운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끊임 없이 방해 받는 상태는 인간의 행복을 말살하는 고통이고, 여기에 문화재에 대한 규제 때문에 고통과 불편이 있어도 감수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문화재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또는 주거지가 관광지화 되었을 경우에 주거민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법제도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하간 고택 체험은 옥연정사가 처음이지만 평소 상상했던 고택 체험의 느낌과는 너무나 달랐다. 부족하다거나 불편했다는 뜻이 아니다. 세심재(洗心齋)의 방 안이나 마루인 감록헌(瞰綠軒)에서 보는 화천의 풍경과 백일동안 피고 질 배롱나무의 곱고 처연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주인께서는 내가 머무는 방이 영화 스캔들에서 배용준씨가 촬영한 방이라고 소개해주셨는데, 그만큼 아름답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곳이 아름다워 영화를 촬영한 것이지, 영화를 촬영해서 이곳이 의미 있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주인께서는 낯설고 어색해 하는 손님에게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다정히 건네신 것이지, 이 고택의 가치는 영화 촬영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고 좋은데, 이 곳에서 있었던 역사의 무게로 인해 평소 상상했던 `그냥 생각을 내려 놓는 편안한 고택 체험`은 될 수 없었다. 물론 편히 쉬었다 가는 것이 죄가 될 수 없고, 주인께서도 이 고택의 가치나 정신을 일부러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징비록을 안다면 어찌 이곳에서 편안하기만 할 수가 있겠는가. 이순신 장군이 바다에서 거둔 승리에 가슴 벅차하고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통해 하듯이, 류성룡 대감이 육지에서 졸렬한 임금과 썩어빠진 지배계층들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며 버티었던 일을 천행으로 여기고 전란 극복의 일등공신이면서도 억울하게 쫓겨난 일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라 해야 할까, 실각은 하였지만 지배계층으로서 남은 여생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며 후손들을 위해 눈물로 쓰셨을 징비록을 생각하면 편안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깨끗하고 안락한 방 안에서 푹신하고 보드라운 이부자리 위에 누워도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주인께서도 일부러 강요하지 않은 역사나 정치 이야기를 더 이상 이곳에 적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 이야기는 오히려 옥연정사에 하룻밤 묵으며 서애 대감의 후손들께 직접 청하여 듣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계획 없이 무작정 내려간 터라 기회가 없었지만 고택 체험 프로그램에 그러한 소개 과정도 있는 듯 하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 또는 아이들에게 역사를 알게 해주고 싶은 분들이라면 옥연정사는 꼭 찾아가야 할 곳이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여사님께서 선물해주신 책에서 절실히 공감하는 문장을 아래에 옮겨 본다. 선물해주신 책은 묵었던 방 안에도 비치되어 있던 책이었는데, 사실 잠을 못자고 새벽녘까지 읽다가 구매해서 마저 읽기로 했던 책이다. 여러 가지로 마음 써주신 여사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류성룡은 조선조 5백년을 대표하고도 남음이 있는 정치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그는 최고의 권좌에 있으면서도 권력을 이념화하지도 가치화하지도 않았다. 대신 실용화했다."

 

"전쟁이 끝나고 재상에서 파직되고, 같은 날 이순신도 전사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후손에게 경계의 교훈으로
동시대인에게는 징계의 채찍으로 글을 남기는데 심혈을 쏟는다.
그의 생생한 필치는 엄청난 생명력으로 읽는 이의 가슴을 때린다."

 

"최고의 레토릭은 정직이다. 그 정직한 기록 때문에 징비록은 우리의 가슴을 전율케 한다.
징비록의 요체는 모든 것은 ‘내 탓’이요, ‘적은 내 안에 있다’이다.
왜군의 만행도 명군의 행패도 모두 ‘내 탓’이다.
내 안에 나를 무너뜨리는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에 대한 화살은 그 다음이다.
그 자책, 그 정신이 4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를 더 징비(懲毖)한다."

- 송복, 조선은 왜 망하였는가, 일곡문화재단(2012)


아, 옥연정사에서 고택 체험을 하면 아침식사로 풍산류씨 서애종가의 정갈하고 맛있는 찬을 맛볼 수 있다.
매우 훌륭한 식사였고 특별히 `대구 보푸라기`가 정말 맛있었다.


아직 날을 잡지는 못하였지만 지인들에게 함께 가자고 벌써 이야기를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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